신앙생활은 결코 혼자의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공동체적인 존재로 창조하시고, 혼자가 아닌 ‘함께’ 걸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신 하나님은 하와를 지으셨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며 사역하셨습니다. 이러한 ‘동행의 영성’은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본질적이고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은 ‘동행’이라는 주제를 여러 방식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 올라갔습니다(창 5:24). 노아 역시 당대에 하나님과 동행한 자로서, 방주를 지어 구원을 받는 복을 누렸습니다(창 6:9). 하나님과의 동행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때로 기쁨이 넘치는 동행일 수도 있지만,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끈질긴 여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걸으셨던 장면들을 우리는 복음서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걸으시고, 성경을 풀어주시며 마음을 뜨겁게 하셨던 주님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신앙 여정에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때에도 결코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동행의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고 권면합니다. 이는 곧,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아픔을 함께하고, 기쁨을 함께하는 삶이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우리는 한 방향을 향해, 곧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순례자들입니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개인화되고 고립된 삶의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의 여정을 혼자 감당하고자 하며, 공동체 안에서도 진심 어린 동행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적 영성은 고립 속에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꽃피우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가정, 친구, 선교지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동행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인카네이션’, 즉 성육신의 사랑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분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시며, 병든 자, 외로운 자, 죄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신앙 여정에 ‘함께 걷는 자’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동행은 단순히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고통을 느끼고, 함께 기뻐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배우고, 이웃과의 동행으로 실천하는 삶.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깊고 따뜻한 신앙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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